[칼럼=LPN로컬파워뉴스] 박찬희 칼럼니스트,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내고...

<사진= 박찬희 칼럼니스트>

<18회에서 이어지는 글> 우리 속담에“굴러온 돌이 박힌 돌 빼낸다.”라는 말이 있다. 필자는 시골에서 자라서 농사를 지어 보았는데 모내기철에 잡초인“피”란 놈은 씨앗에서 발아하여 싹이 올라올 적에는 바늘같이 가느다랗게 아주 연약하게 올라오지만 이것이 주인인“모”에게“여기 한 발작만 들여놓자.”라고 비집고 들어와서는 그 성장력이 왕성하여 어느새 안방을 차지하고 주인인 모를 오히려 자라지 못하게 눌러버리는 것이다.

자- 지금 우리나라의 사회상이 바로 이 현상이다.

외래의 사상이 비집고 들어와 안방을 차지하고 지금은 이것들이 주객이 전도되어 주인행세를 하고 있다.

200여년 전 이조말엽에 탐관오리들이 우글거리고 백성을 수탈함으로 백성들은 도탄에 빠져 목숨자체를 이어가기가 고달픈 시기에(아마 지금의 북한이 이 지경일 것이다.) 견디다 못한 백성들은 호남에서 시발로 동학농민운동을 일으키나 그 동학혁명을 조정에서는 외세를 끌어들여 진압을 하고 백성들은 희망을 잃고 좌절감에 시름하던 차에 즉,“물에 빠진 사람은 지푸라기라도 잡으려 한다.”는 현실에 처한 때에 서양에서 유일신사상인 기독교(가톨릭)가 이 땅을 노크함으로 백성들은 마치 구세주를 만난 양 선교사들의 선교에 의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스펀지가 물을 빨아들이듯이 기독교를 받아드리고 있다. 이 들은 無父無君(무부무군; 부모도 임금도 없다.)이다. 오직“천주님”만 있을 뿐이다. 고 외쳐대므로 조정에서는 영조, 정조 때 이들을 잡아다가 새남터와 절두산에서 수 만 명을 죽였다. 지금은 그 곳이 이들의 성지가 되어있고... 8,15 해방 후에는 이 땅에 미군이 진주하면서 그들의 신앙인 프로테스탄트 개신교를 이 땅에 심기위하여 미국의 잉여물자인 480호 구호물자를 교회를 통하여 배고픈 국민들에게 배포함으로 그 구호물품을 받기위하여 이 필자도 어릴 적에 교회를 가곤 하였다.

사람에게는 배고픈 설움보다 더한 설움은 없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 배고픔을 달래기 위하여 교회에 나가게 되어 이 땅에 개신교가 자연스럽게 뿌리를 내리게 되고 지금은 스스로 세뇌되어 아니 탐욕에 찌들은 교직자들이 신도들을 惑世誣民(혹세무민)으로 세뇌를 시키므로 이제는 어찌할 수 없는 야훼의 노예와 종이 되어 그 틀 안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다.

허우적거리는 정도가 아니고 이들이 탈북자들을 모두 기독교로 세뇌를 시키고 마치 자기들이 통일의 주역이 되겠다고 하는데 일찍이 로마는 다신교의 신앙일 때에는 번성했으나“콘스탄티누스”가 정략적으로 기독교를 국교화 하면서 기독교의 배타사상이 자신들의 집단과 로마를 같이 망해먹은 역사가 있듯이(이 내용은 아직 출판이 안 된 2권의 책에서 자세히 기술 해 놓았음) 기독교의 유일신사상의 모체인 유대교는 이스라엘 민족을 애굽으로부터 모세가 이끌고 나와 가나안땅으로 밀고 들어가 300년 이라는 긴 세월동안 원주민 “힉소스”민족과 피비린내 나게 전쟁 끝에 이스라엘 왕국을 건설하는데 사울, 다윗, 솔로몬에 와서 불과 119년 만에 남북으로 분열이 되고 있다.

이와 같이 유일신사상은 통합의 정신이 아니고 배타의 정신이고 배타를 함으로 분열을 하는 대명사이다.

그런 기독교가 통일을 염원하는 것은 심정적인 것이고 그 기본 정신은 분열인데 어떻게 통일을 하겠다는 것인가?

앞글 18회에서 기독교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 했던 단체들이 불교와 유교가 주도하는데 이 필자는 불교가 전공이다. 그래서 “불교는 우리 한민족의 정신을 말살한 제1의 종교”라는 장문의 글을 써 놓았는데 이글은 희망하시는 독자들에게만 보내드리겠습니다.

저를 독자들께서 민족주의로 편향적이다. 라고 보실 분들도 있겠으나 저는 철저하게 신앙인이 아니고 학문을 탐구하는 학구파입니다.

학문은 六下原則(육하원칙)에서 하나만 벗어나도 그것은 학문이 아니고 사견이다. 는 신념으로 말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뒤 글에 저를 25년을 가르치신 제1의 스승이신 송 호수 박사님의 학문도 실란하게 그 틀렸다는 것을 비판을 할 것입니다.

학문은 진실을 세우는 것이 학문이고 그 학문이 아직은 진실에 도달을 못했으면 그의 후학이 세워야 하는 것입니다.

제가 닦은 학문은 제도권의 교육에서는 가르쳐 주지도 배울 수도 없는 학문입니다. 그러나 홍익인간사상은 우리 ⌜한⌟민족의 정신이고 혼입니다.

앞으로 미래의 세상에 이것이 아니면 인류평화를 이룰 수 없습니다.

이렇게 설파하면 너무 거시적인 말 만 하니까 그러면 홍익인간사상이 현 나의 생활에 어떠한 도움이 되는가? 라고 질문을 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피부에 와 닫는 일상적인 한 구절을 기술 하겠습니다.

요즘 예식장에 가보면 주례자가 신랑 신부에게“검은머리 파뿌리 되도록 해로하고,” 라는 말은 하지 않습니다. 아마 고리타분하고 늘상 하는 말이라 식상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보다 더 소중한 말은 없습니다.

왜? 냐면 날이 갈수록 이혼율이 증가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래서 홍익정신에 입각한 주례사를 그 본보기로 써 보이겠습니다.

◉ 지금 제 앞에 서있는 신랑과 신부는 많은 하객들의 축복과 박수 속에 새출발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신랑과 신부 두 사람은 서로 힘을 모아 거친파도를 헤쳐나아가야 할 험난한 바다의 항해에 나선 것입니다.

인생을 항상 순탄하고 즐거움만 있는 게 아닙니다. 두 사람이 살아가는데 많은 어려움과 실연도 있을 것입니다. 그 것을 어떻게 슬기롭게 극복하고 행복하게 살아갈 것인가를 홍익인간사상에서는 이렇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첫째; 싸움을 하지 말고

둘째; 거짓말을 하지 않고

셋째; 서로 돕고 사라라입니다.

이 셋 중에 가운데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부부간에나 모든 대인관계는 신뢰가 바탕입니다. 그 신뢰의 시작은 진실입니다. 신뢰를 바탕으로 사람과 사람사이 부대끼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신랑과 신부는 서로 다른 가정의 생활문화 속에서 자라고 성인 되었으므로 살다보면 서로 이질감이 발견되고 다툼의 시작이 될 때도 있습니다. 그 다툼이 증폭하다 보면 파국을 맞는 부부도 많습니다. 그러나 그 여러 어려움을 극복 하는 데는 서로 신뢰가 바탕입니다.

부부간에는 상호 비밀이 없어야 됩니다. 요즘 휴대폰이라던가 그런 비밀번호도 부부간에는 공유하여야 됩니다. 이것을 프라이버시 침해라고 보면 안 됩니다. 부부는 엄필칭 일심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부부사이에 프라이버시 운운하는 것은 아직 이들이 일심동체가 안 되었다는 것입니다.

부부간에는 상호 자존심은 필요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려면 거짓말을 안 하는데서 시작입니다. 상호 신뢰가 쌓이면 큰 싸움도 작게 해결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신뢰관계가 성립이 안 되면 작은 문제도 그것이 증폭 재생산되어 파국을 맞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홍익인간사상의 핵심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이고 그러면 행복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檀君의 子孫 弘仁 朴 鑽 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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